충청정치반세기2011.03.22 10:30

신당(자민련)창당 JP(김종필)와 한배 … 녹색돌풍 일으키며 초대 민선시장 당선

   
 
  ▲ 자민련을 창당한 JP가 6·27 지방선거에 출마한 홍선기 대전시장 후보와 함께 유등천변에서 막바지 선거유세를 벌이고 있다. 충청투데이DB  
 


◆JP와 만나다


정치는 늘 변화한다. 흐르는 물처럼 단 한 순간도 머물지 않고 물 속 밑바닥의 작은 돌멩이만으로도 큰 파장을 일으킨다. 그만큼 정치는 예단할 수 없다. 홍 전 시장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홍 전 시장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이 시시각각으로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가 1994년경이다.

당시 정가에선 ‘조만간 지방자치가 실현된다’는 소문이 돌고 있었고, 실제로 정치권에서 홍 전 시장에게 물밑 접촉을 하기 시작했다.

소위 지방선거가 치러지면 출전시킬 ‘선수’를 물색하는 작업이었다.

이와 함께 또 하나의 소문이 퍼지고 있었는데, 1년 후 김종필(JP) 민자당 대표가 탈당해 새로운 정당을 만든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석모 의원에게 전화가 왔다. “시간이 되면 청구동에 들어가자”는 연락이었다. JP의 자택이 서울시 중구 청구동에 위치해 있다 보니 정치인들은 JP의 집을 ‘청구동’이라고 불렀다.

이후에도 여러 명의 국회의원들이 홍 전 시장에게 전화를 걸어와 청구동 방문을 권유했다.

홍 전 시장도 ‘무슨 일이 이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에게 접촉을 시도한 의원 대부분이 JP 직계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홍 전 시장은 망설였다. 청구동을 간다는 것 자체가 암묵적으로 JP와 한 배를 타겠다는 것을 시사 하는 일이다. 정치적 운명이 달린 결정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오래 끌 문제도 아니다. 한 번은 거쳐야 하는 일 아닌가.

그는 고심 끝에 청구동에 들어가기로 약속을 했다. 다음 날 약속대로 청구동에 간 홍 전 시장은 거실에 대기하며 JP와의 면담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뜻 밖에도 심대평(현 국민중심연합 대표) 씨와 K 씨가 거실로 들어오는 것 아닌가. 이들 모두 관선 대전시장과 충남도지사를 역임한 인물들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지만, 드디어 JP가 있는 내실로 안내됐다.

“한 번 같이 해봅시다.”

JP는 이들을 보자마자 거두절미하고, 이렇게 말했다. JP의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대답을 못하고 나오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대전지역 신문사의 서울 주재 기자들이 JP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사진을 찍고 난리가 났다. 다음 날 이들의 JP 방문에 대한 기사가 대대적으로 실렸다.

비상이 걸린 건 민자당이었다. 기사가 나온 날 민자당 국회의원이 홍 전 시장에게 급하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매몰차게 거절할 수 없었던 홍 전 시장은 며칠 후 강남의 한 호텔 일식집으로 나갔다. 그런데 그 장소에는 민자당 대표가 나와 있었다.

대표는 홍 전 시장에게 “왜 하필 그런 사람이 만든 당을 가려고 하느냐”며 당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설득했다. 이어 당에 남아 있으면 공천을 보장해 주고, 떨어지더라도 장관 자리를 주겠다는 구체적인 제안까지 내밀었다.

홍 전 시장은 난처했지만, 이미 마음을 굳힌 상태였다. 홍 전 시장은 작심하고 말했다.

“대표님, 젊어서부터 고향에서 민선 시장이나 도지사로 일해 보는 것, 그것도 아니면 면장이라도 하면서 봉사하는 게 제 꿈이었습니다. 지역 여론도 이 당(민자당)으로는 안 된다고 합니다.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홍 전 시장은 이 말을 뒤로 하고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얼마 후 민자당에 탈당서를 제출했다.

탈당을 한 홍 전 시장은 JP의 신당 창당 작업에서도 한 발 물러선 채 집에서 칩거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창당을 준비하는 조직 내에서 1995년 6월 27일 치러지는 첫 민선 단체장 후보 명단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홍선기는 ‘대전시장 출마’, 심대평은 ‘충남도지사 출마’로 가닥이 잡혔다.

민자당에선 임명직 시장을 지낸 바 있는 염홍철(현 대전시장) 씨가 후보로 나섰다는 소문이 들렸다.

 

   
▲ 자민련 대전시장 후보 추대식이 열린 1995년 5월 15일 홍선기 후보가 JP가 써준 ‘출사무적’ 휘호를 들어보이고 있다. 충청투데이DB


◆자민련 ‘녹색깃발’ 들다

신당 창당 작업은 빠르게 진행됐다. 1995년 3월 드디어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정식 창당대회를 열고,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깃발이 올랐다. 홍 전 시장은 당의 요청으로 창당대회에서 창당선언문을 낭독하기도 했다.

신당이 창당된 마당에 홍 전 시장도 더 이상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었다. 앞 뒤 가리지 않고 대전 서구 가장동에 주공 아파트를 얻어 내려왔다.

그런데 막상 선거에 뛰어들려고 보니 앞이 보이지 않았다. 모아둔 돈도 없었다. 조직을 만들어야 하는데, 창당만 했을 뿐 신당의 실체가 없다보니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사람도 없었다.

홍 전 시장은 무조건 사람을 만나고 다녔다. 그런 중 한 지인으로부터 ‘대전은 대전상고 출신이 많아 무시할 수 없으니 이들의 도움을 받으라’는 조언을 들었다. 홍 전 시장은 당장 대전상고 동창회장을 찾아가 ‘일 할 만한 사람 좀 추천해 달라’고 요청했고, 후일 선거에서 이들의 지원을 톡톡히 받게 됐다.



◆자민련, 핫바지 돌풍에 충청도 싹쓸이

이즈음에 충청민심을 자극하는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지금도 회자되는 ‘충청도 핫바지론’이다. 김윤환 당시 민자당 의원이 “충청도 사람이 당을 새로 만든다는데, 충청도 사람들이 핫바지냐”며 탈당한 JP를 비판했다는 내용이 신문 지상에 대서특필된 것이다. 김 의원은 JP를 비난한 것이지만, 충청도 민심은 ‘핫바지’에 꽂혔다.

지방선거를 몇 개월 남겨두지 않은 상황에서 ‘핫바지’는 엄청난 휘발성을 띠고 번졌다. 이는 충청도를 기반으로 한 자민련의 ‘녹색돌풍’으로 이어졌고, 충청지역을 강타했다.

결국 그해 지방선거에서 자민련은 충청 지역을 싹쓸이 했고, 이듬해 총선까지 이어져 국회 의석 50석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해내기도 했다.

홍 전 시장도 63.8%의 득표율을 얻으며, 당선의 영광을 안고 초대 민선 대전시장이 됐다.

당시 자민련은 홍 전 시장 이외에도 충남도(심대평 후보), 충북도(주병덕 후보), 강원도(최각규 후보) 등에서도 광역단체장을 배출했다.

이후 홍 전 시장은 “초대시장으로서 고향인 대전이 광역시로 발전할 수 있는 주춧돌을 놓겠다”라는 취임 일성처럼 일에만 몰두했고, 4년 후인 1998년 6월 4일 열린 제2회 지방선거에서도 홍 전 시장은 무려 73.7%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한다. <계속> 이의형 편집부국장 겸 정치부장

이선우 기자 swlyk@cc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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