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7대 홍선기 충남도지사 취임. 1992년 9월 19일. 충청투데이DB  
 

자의반 타의반으로 정치에 입문하게 된 홍 전 시장은 민정당 충남도당 초대 사무국장으로 발령을 받게 된다. 정치의 생리를 전혀 모르던 공무원 출신의 신출내기 정치인 홍 전 시장. 첫 시련은 조직 관리였다.

막걸리 선거, 고무신 선거라고 불릴 만큼 ‘돈’으로 정치가 이뤄지던 시대였지만, 홍 전 시장은 이런 생리를 전혀 몰랐다. 알고 싶지도 않았다. 여기에 20여 년 동안 몸에 밴 공무원의 강직함도 여전히 버릴 수 없었다.

그렇다고 ‘정치판’이 홍 전 시장을 가만히 둘리 없었다. 점심 때 즈음되면 소위 정치꾼들이 당사로 몰려들었다. 으례 이들에게 밥 먹이고, 차 사주는 게 사무처장이 할 일. 그러나 홍 전 시장은 모른 척 했다. 오직 당무에만 몰두했다.

이렇게 얼마가 지나자 밖에서는 ‘공무원이 사무처장으로 와서 밥도 안 사주고, 보리차만 먹인다’는 소문이 돌았다. 오죽했으면 대전에서 주류 도매상을 하던 홍 전 시장의 친척이 달려와 “내가 당 판공비 줄 테니 제발 사람들에게 밥 좀 사주라”고 간청했을 정도였다.

정치 초짜 홍선기에게 한 발 한 발이 벼랑을 걷는 분위기였다. ‘여성부위원장 제도’가 처음 생겼을 당시였다. 부위원장을 뽑는다는 공고가 나자, 정치에 관심이 있는 여성들이 구름처럼 몰려들기 시작했다. 어찌보면 홍 전 시장도 사무처장으로 내려와 지역 정치 바닥에서 낯을 좀 세울 수 있는 기회였다. 그런데 반대로 홍 전 시장은 남모를 고충에 빠졌다. 소위 ‘자격 미달’이지만 매몰차게 거절하지 못할 인물들이 후보 신청을 한 것이다. 그들은 지역에서 힘 좀 쓴다는 인사들의 부인들이었다. 며칠을 고심하던 홍 전 시장은 급기야 묘안을 짜냈다. 인선 ‘원칙’을 만든 것. 우선 고학력자에 50세 미만, 대전 출신 한 명과 충남 출신 한 명 씩만 뽑는다는 원칙이다.

홍 전 시장은 “그랬더니 후보자들이 대폭 줄어들면서 자연스럽게 정리됐다”라면서도 “그런데 그 때 떨어진 인사들은 나중에 내가 시장을 할 때까지도 두고 두고 협조를 안 하더군”라고 말했다.

   
▲ 제2대 홍선기 대전광역시장 중구청 연두방문. 1992년 1월 19일. 충청투데이DB
◆대전시장이 되다.

‘현실정치’의 거대한 파도는 부표처럼 떠 있던 홍 전 시장을 끊임없이 흔들었다.

1985년 12대 총선에서 민정당이 패배하자, 홍 전 시장의 ‘사무처장’ 자리도 날아가 버렸다. 신분 보장 해주겠다고 했던 중앙당의 약속은 온데간데없어졌다. 이미 사표를 쓰고 나온 마당에 다시 공무원으로 돌아갈 수도 없었다. 졸지에 실업자 처지가 된 것이다.

홍 전 시장은 “정치인의 말이나 약속은 한 귀로 듣고 흘려야 한다는 것을 그 때 배웠다”고 회고했다.

정치인이 선거에 패배하면 유구무언(有口無言)이 된다. 홍 전 시장도 어디에 가서 하소연조차 못한 채 실의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정무장관실에서 연락이 왔다. 조정관(2급)으로 오라는 것이었다. 당시 정권에 서운한 감도 있었지만 ‘실업자’가 된 판국에 그런 것을 따질 형편도 아니었다. 다시 공직에 복귀한 홍 전 시장은 1년 후 정무실장(1급)으로 승진해 5년을 보낸 후 1990년 12월 6공 정부에 의해 대전직할시장(2대)으로 임명된다. 그에게는 공직생활 30년만의 ‘금의환향(錦衣還鄕)’이었다.

“그 때 개인적으로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이었다. 공직 최말단에서 여기(대전시장)까지 올라왔고, 더군다나 고향에서 시장을 한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감격스럽다”고 홍 전 시장은 당시를 그렸다.

그렇지만 정권의 입김 한 번에 날아가 버리는 것이 ‘임명직’ 관선시장의 목숨. 정권의 눈 밖에 나면 하루아침에 옷을 벗어야 하는 시절이었다. 홍 전 시장도 여기에 자유롭지 못했다.

시장이 됐지만 ‘정치적 압력’은 늘 그를 힘들게 했다.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한 가지 사건이 있다. 그가 시장으로 부임하자 발생한 일이다. 업무 파악을 하다보니 대전 보문산 사정리 쪽에서 석산을 개발하도록 허가가 날 판이었다. ‘이권이 개입된 사업’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은밀히 내용을 파악해 보니 정치적 입김이 작용한 청탁이었다. 그것도 여당의 최고위층의 부탁이라서 함부로 거절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전임 시장도 개발하도록 허가해 주겠다고 여당 측에 구두로 약속해 놓은 상태였단다. 난감했다. 아무리 여당 최고위층의 청탁이라도 대전 유일의 공원인 보문산을 훼손할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홍 전 시장은 밤잠도 못 잘 정도로 고민에 빠졌다. 비서조차 대동하지 않고 혼자서 개발 예정지를 몰래 다녀오기를 수차례 반복했다. 고심을 거듭한 끝에 홍 전 시장은 조그마한 차트 하나를 직접 만들었다. 그걸 들고 청탁을 부탁한 여당 고위층을 찾아간 홍 전 시장은 청탁 거절 입장을 조심스럽게 밝혔다. 예상대로 돌아온 것은 점잖으면서도 서슬 퍼런 답변이 돌아왔다.

“어떻게 행정이 이럴 수 있나. 전임 시장은 된다고 해놓고 이제와선 안 되느냐고 하니 말이 되나.”

홍 전 시장은 “다른 사업 하나를 만들어 주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해 주겠다는 약속으로 간신히 무마를 했지만, 그 당시에는 시장 직을 그만 줄 각오를 했었다”고 말했다. 지금도 그 때의 판단에 후회 없단다.


◆가슴아픈 기억

대전시장 자리는 그의 공직생활에서 벅찬 감격의 순간인 동시에 가장 가슴 아픈 기억도 서려 있다.

대전시장 임기 중이었던 1992년 3월 24일 치러진 14대 총선에서 민자당(1990년 1월 민정당은 통일민주당, 신민주공화당과 합당하고 민주자유당으로 다시 출범했다)이 참패하면서 시장 직에서 경질됐다. 이때가 1992년 4월이다.

당시 민자당은 대전의 5개 선거구 중 동갑구를 제외한 4개 선거구에서 패배했다. 민자당에서 공천을 잘못한 결과라는 것이 현지의 중론이었으나, 현직 시장이었던 홍 전 시장이 일정 부분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여권의 분위기였다.

아이러니컬한 것은 이 지역에 대한 공천권을 거의 행사했던 사람이 후일 홍 전 시장과 깊은 인연을 맺게 될 ‘김종필(JP)’이었다라는 사실이다.

정치와 행정을 오가던 홍 전 시장은 또 다시 ‘실업자’가 됐다. 소일거리 하나 없이 지낸지 한 달여가 채워질 무렵 뜻밖의 소식이 전해졌다. 신용관리기금 이시장으로 가라는 것.

이 대목에서도 숨은 비화가 하나 있다. 홍 전 시장의 기사회생에는 노태우 대통령이 통일민주당 등과 합당하며 민자당을 만들 당시, 민주계 측에서 넘어온 S 씨의 보이지 않는 활약이 컸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민심 파악 차원에서 대전에 내려온 S 씨는 지역의 민주계 인사들과 저녁을 먹게 됐다. 가볍게 지역 돌아가는 얘기나 듣자고 만든 자리는 순식간에 정권 성토의 장으로 변했다. 참석한 인사들은 “대전에 내려와 일 잘 하던 사람(홍 전 시장)을 왜 그렇게 만들었느냐. 지역 민심이 흉흉하다”고 입을 모았다. ‘뭔가 조치를 취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 S 씨는 이런 내용을 노태우 대통령에게 직접 전달했고, 대통령의 지시로 홍 전 시장의 자리가 마련된 것이다.


◆위기는 기회를 만든다

홍 전 시장은 어렵사리 신용관리기금 이사장을 맡았지만, 운명은 그를 다시 공직의 길로 끌어 들었다.

1992년 9월 ‘한준수 연기군수 양심선언 파동’이라는 대형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사건의 요지는 이렇다. 1991년 말부터 1992년 초 14대 총선을 앞두고 한준수 연기군수는 당시 민자당 임재길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지역주민에게 손목시계를 제공하고, 소속 공무원을 동원해 선거운동을 하며 금품을 살포하는 등 관권 부정선거를 주도했다는 것이다.

한 군수는 정치권에서의 관권개입 선거운동 사실 등을 언론에 폭로했고, 즉시 국회의원 선거법 위반과 국회의원 선거 과정에서 비위행위 등을 이유로 파면 처분됐다. 하지만 사회적인 파장은 엄청났다. 공무원들이 선거에 깊숙이 개입돼 하수인 역할을 해 왔다는 공공연한 비밀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공직사회 뿐만 아니라 정치권도 심각한 후폭풍을 맞아야 했다.

정부와 여당은 사태 수습이 시급했다. 특히 사건의 핵심 지역인 충남의 민심을 다독이는 것이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이를 위해선 충청도를 가장 잘 아는 인물을 찾아야 했다. 청와대 등은 전국을 대상으로 인선에 돌입했고, 신용관리기금 이사장으로 가 있던 홍 전 시장의 이름이 거론됐다.

충남도 공무원으로 잔뼈가 굵었고, 정당 생활도 어느 정도 한 홍 전 시장이 적임자로 지목된 것이다. 청와대는 홍 전 시장을 충남도지사로 서둘러 임명했다. 급파 형식이다 보니, 도지사 임명 사령장도 혼자 받았다. 홍 전 시장은 ‘충남도지사’라는 명예로운 자리에 옮겼지만, 속내는 그리 편하지 않았다. 대통령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임명을 거부할 수도 없는 처지였다.

그렇게 홍 전 시장은 막중한 임무와 무거운 마음을 안고 도지사에 취임했다. <계속>

이의형 편집부국장 겸 정치부장

이선우 기자 swlyk@cctoda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