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정치반세기2011.03.22 10:39

잇단 패배이후 14대 성공... 4년간 근성. 추진력으로 의정 결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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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희부(박근혜 오른쪽) 등 민추협 일부 인사들은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대권 후보 경선에 나선 박근혜 전 대표 지지를 선언했다. 박 전 대표는 지지선언을 하는 자리에서 “큰 힘을 얻었다”고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1985년 12대 총선 낙마했지만, 가능성을 엿본 박희부는 부지런히 고향인 연기를 누볐다.

그리고 4년 뒤 1988년 13대 총선에서도 박희부는 김영삼의 통일민주당 공천을 받아 출마했다. 선거구도 대덕·연기·금산에서 대덕·연기로 좁혀졌다. 선거방식도 앞선 중선거구제에서 소선거구제로 바뀌었다. 박희부의 입장에서 ‘금배지’에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지만, 그의 차례는 돌아오지 않았다. 충남에서 ‘JP’바람이 분 것이다. 여기에 신민주공화당 후보로 이인구 씨(현 계룡건설 명예회장)가 막강한 재력을 배경으로 무서운 상승세를 보이고 있었다. 결과는 이인구 씨의 당선. 박희부는 2등으로 또 한 번의 패배를 맛봤다.

2년 뒤인 1990년에는 3당 통합(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으로 민자당이 출범한 뒤에는 그가 맡아왔던 연기군 지구당 위원장 자리마저 현직 국회의원인 이인구에게 내주는 시련을 겪어야 했다.

다시 1992년 14대 총선이 다가왔다. 그는 이번에는 자신 있다고 판단했다. 대전의 직할시 승격으로 연기군이 단일 선거구로 됐기 때문이다. 비록 12대·13대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연기군에서만큼은 져 본 적이 없었다. 김영삼 대표도 그에게 공천을 주려고 했다.


◆졸업가 3절

그러나 정치권은 철저한 힘의 논리로 작동되는 곳이다. 그 시대와 그 순간 힘의 균형 추가 어디로 기울어져 있느냐가 가장 중요했다. 집권 민자당의 공천은 임재길 대통령 총무수석에게 돌아가고 만 것이다.

박희부는 평생을 모신 김영삼 민자당 대표가 왜 공천을 주지 않았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김영삼의 ‘큰 그림’ 때문이었다. 대권을 잡으려면 노태우 대통령에게 공천을 넘겨 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속사정이 있었지만, 박희부의 입장에서도 ‘찾아온 기회’를 놓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는 김 대표를 찾아가 “이번에는 무조건 출마하겠다”라고 말했다. 탈당을 의미한 것이다. 그러자 김 대표는 "초등학교 졸업가 3절을 아느냐"는 뜻모를 말을 던졌다. 그 당시는 무슨 말인지 몰랐으나 나중에 알고 보니 초등학교 졸업가 3절에는 ‘냇물이 바다에서 서로 만나듯 우리도 이 다음에 다시 만나세’라는 가사가 나온다고 했다.


◆국민당 공천으로 당선, 가장 먼저 탈당

탈당을 불사하고 ‘출마’의 뜻을 세웠지만, 박희부는 무소속의 불리한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해야 했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故) 정주영 씨가 창당한 국민당 공천을 받은 것이다.

당시 소문은 박희부가 재벌 정당에서 공천을 받아 수 억 원을 지원받았다고 났지만, 사실과 다르다고 말했다. 후보에게는 판공비 명목으로 조금밖에 안 주고, 나머지는 현대 측에서 직접 나와 선거운동의 자금을 관리했다는 것이 박희부의 주장이다.

본격적인 선거가 시작됐지만, 청와대 출신의 막강한 배경을 가진 임재길 후보의 싸움은 결코 쉽지 않았다. 당시 정부 여당은 임 후보를 무조건 당선시켜야 한다는 상부의 지시에 따라 연기군 내 여관에 상황실을 설치하고, 정보기관 직원들도 상주하다시피 했다고 박희부는 증언한다. 후일 정부여당의 노골적인 관권선거는 한준수 연기군수의 양심선언으로 백일하에 드러나기도 했다.

선거판에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기도 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박희부가 선거를 하면서 가장 괴로웠던 것은 김영삼 민자당 대표가 임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 연기군을 찾았을 때였다. 김 대표가 임 후보를 지지한다면, 박희부의 입장에서 평생을 쌓아온 정치 뿌리가 흔들릴 상황이었다.

그는 앞뒤 가릴 것 없이 꽃다발 하나를 들고 김 대표가 앉아 있는 임 후보 지지연설회 단상으로 올라갔다. 그리곤 김 대표와 껴안는 척하면서 “대표님, 날 죽이러 왔소? 연단에 올라가거든 내 말 한 마디만 해주시오”라고 속삭였다. 김 대표는 실제로 연단에 올라가 임 후보의 지지를 호소하면서도 "박희부 후보는 나와 야당을 같이 했던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

이런 악조건 속에서도 박희부는 ‘당선’이라는 영광을 차지했다. 박희부는 “내가 똑똑해서 된 것이 아니다. 의원 배지도 못 달고, 야당만 하고 다닌다고 불쌍하다며 밀어 준 거지”라고 말했다. 천신만고 끝에 당선됐지만 그는 보스와의 의리를 저버릴 수가 없어 국민당에서 가장 먼저 탈당, 잠시 무소속으로 있다가 92년 대통령 선거 18일 전에 김영삼 캠프로 복귀했다.

 

   
▲ 박희부 전 국회의원이 박근혜 전 대표와의 자리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

◆ 몸으로 뛴 4년

꿈에도 그리던 국회의원 시절, 박희부는 의원들 가운데서도 유명 인사였다. 몸에 밴 야당 기질과 추진력으로 ‘목표’를 세우면 끝까지 물고 늘어졌다. 유명한 일화가 몇 가지 있다.

1994년 7월 13일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위해 국회 예결위에서 박희부와 김숙희 당시 교육부 장관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그는 언쟁을 벌이면서 김 장관에게 “이마를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는 강철심장을 가졌지 않느냐”고 공격했다. 언쟁의 발단은 농촌 학군제 폐지 여부였다.

농촌 학생은 농촌 학교에만 진학할 수 있고 도시 학교에는 진학할 수 없도록 돼 있는 학군제를 폐지하라고 박희부는 주장했다. 반면 김 장관은 “공동 학군제를 도입할 경우 또 다른 부작용의 우려가 있어 시교육감과 인접 도교육감 사이에 절충을 유도하고 있다”고 맞섰다. 그러나 논쟁의 초점은 없어지고 언쟁만 남아 박희부는 여성단체와 언론으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았다.

일화 하나를 더 소개한다면, 당시 건교부 장관에게 지역구인 연기군을 지나가는 국도 1호선 확장공사와 관련해 예산을 따 올 때의 일이다. 건교부 장관에게 확장공사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어찌나 심하게 무릎을 꿇었는지 바닥이 깨지는 소리가 났다. 이 소리에 놀란 장관은 박희부를 의자에 올려 세우면서 ‘무조건 알았다’고 약속했다고 한다. 박희부는 너무 심하게 무릎을 꿇어 지금도 아프다고 한다.

이밖에도 연기문화예술회관 건립비, 전의 비암사 중창불사 등 그가 의원으로 있을 동안 무려 3000억 원의 국비를 연기군에 끌어 왔다는 것이 박희부의 주장이다.


◆ 박근혜 지원하다

박희부는 14대 국회의원을 지낸 후에도 15대(신한국당), 16대(민국당), 17대(민주당) 총선에도 도전했지만, 자민련 바람과 선거구 확대 등 복잡하게 돌아가는 정치상황과 맞물리면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럼에도 박희부는 고향 연기를 떠나지 않았다. 정통야당의 끈질긴 근성 때문이기도 했지만, 평생을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위해 싸워 온 그의 가슴속에는 여전히 ‘큰 꿈’이 꿈틀거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 대권 후보로 이명박 후보와 박근혜 전 대표가 치열한 경합을 벌이던 5월 박희부 등 민추협 일부 인사들은 박 전 대표 지지를 선언한다.

박희부 등 민주세력의 합류는 민주화 이력이 없다는 박 전 대표의 약점을 보완해 주는 역할을 하기에 충분했다. 박 전 대표도 박희부 등이 지지선언을 하는 자리에 직접 참석해 “큰 힘을 얻었다”고 감사의 뜻을 표하기도 했다.

박희부가 박 전 대표의 캠프에 합류할 당시 YS의 반대가 있었다고 한다. 박 전 대표가 독재자(고 박정희 대통령)의 딸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러나 박희부는 YS에게 “아버지가 독재자라고 딸까지 독재자는 아니지 않습니까”라고 항변했다.

박희부와 함께 박 전 대표 캠프에 합류키로 했던 서청원 전 미래희망연대 대표도 “연좌제를 누가 풀었습니까. 각하(YS)가 풀지 않았습니까”라고 거들었다.

비록 한나라당 대권 경선에서 박 전 대표는 고배를 마셨지만, 박희부는 여전히 박 전 대표에 대한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한다.

학생운동과 야당에서 잔뼈가 굵었고, 국회의원까지 지낸 박희부는 스스로를 ‘아마추어에서 프로가 된 케이스’라고 말한다.

그리고 박희부는 자신의 정치 인생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고 강조한다. 자신의 정치인생은 여전히 진행 중이란다. 오늘도 꿈을 꾸고 있다고…. <끝>

이의형 편집부국장 겸 정치부장·이선우 기자 swlyk@cctoday.co.kr

사진: 박희부 전 국회의원 제공


Posted by 이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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