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정치반세기2011.03.22 10:35

열정바친 두번의 민선시장 … 그의 족적은 역사로 남아있다



   
 
  ▲ 홍선기 전 대전시장은 1998년 열린 제2회 전국지방동시선거서도 당선돼 같은해 민선2기 대전시장으로 취임식을 가졌다. 홍 전시장 왼쪽에는 고(故) 이원범 전 국회의원의 모습도 보인다. 대전시청 제공  
 
홍선기 전 시장은 두 번의 민선 시장 기간 온 열정을 바쳤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 시간의 흐름마저 잊는 법. 어느새 2002년에 열리는 3번째 선거가 돌아오고 있었다. 이제 그의 나이도 66세가 됐다. 20대 꿈 많던 청년 공무원은 머리엔 흰 서리가 내린 노련한 대전시장이 돼 있었다. 선출직이 아니었다면 벌써 퇴직하고 남을 나이였다. 이즈음 홍 전 시장은 스스로에게 "3번째 선거에 도전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반복했다. 아직 꺼지지 않은 대전발전에 대한 열정을 다시 한 번 불태워야 할지, 미래를 후배들의 몫으로 남기고 ‘아름다운 은퇴’를 해야 하지 고민이었다. 하지만 늘 그랬듯 결단의 순간은 돌아왔다.


◆‘불출마하겠습니다’ = 2001년 가을 일이다. 대전과 충남, 충북 등 3개 시도지사와 JP가 천안에서 골프를 친 후 저녁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홍 전 시장이 JP에게 "내년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겠습니다. 이젠 할 만큼 했고, 후배들에게 대전을 맡기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JP는 크게 화를 냈다. 앞서 열렸던 2000년 16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자민련은 17석(지역구 12석·비례 5석)밖에 확보하지 못하는 등 정치적으로 어려운 시기였다. 그만큼 자민련에게는 2002년 지방선거는 존립과 직결된 상황이었다. 당선이 가장 유력한 홍 전 시장이 출마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받아들여질 수 없었다.

그럼에도 홍 전 시장은 JP에게 '거취표명'을 한 것이다. 대전으로 돌아온 홍 전 시장은 이때부터 모든 선거 준비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남은 시장 임기를 아름답게 마무리 하고 싶다는 생각에 그동안 벌려 놓았던 사업들을 하나씩 챙기며 몇 달을 보냈다.

그런데 선거가 치러지는 2002년 봄 우연히 홍 전 시장을 만난 JP는 "(선거) 준비는 잘 돼 가나. 당신 밖에 대안이 없어"라고 하는 것 아닌가.

당황스러웠지만 JP의 설득에 홍 전 시장은 다시 마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1994년 청구동에서 "한 번 같이 해봅시다"라는 JP의 짧은 말 한 마디에 여당을 버리고 신생 야당에서 첫 지방선거에 출마할 때처럼 말이다.

문제는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 왔지만, 이미 선거를 지원할 조직이 다 떠나 버린 상태였다는 점이다. 불출마를 결심하고 조직 관리를 안 한 탓이다.

그래도 마음 한 구석에선 '지난 8년 동안 대전을 위해 열심히 일했다고 자부할 수 있는데, 시민들이 알아 줄 것'이라는 자신감도 은근히 생긴 것도 사실이다. 여론조사에서도 상대 후보들을 앞서고 있는 것으로 나오고 있었다. 이것이 방심이었다.

이미 민심의 큰 흐름을 돌리기에 늦은 시기였다.

홍 전 시장은 당시 선거 과정에서 겪었던 어려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떨어지지는 않겠지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한 번은 어느 모임에서 '돈 안 쓴다. 선거운동 열심히 안 한다'라며 나에 대한 성토가 벌어지더군. 제일 답답한 것은 선거에 나선 당사자이고, 출마를 했으면 이기려고 나온 것인데 말이야."

결과는 참혹했다. 그 해 6월 13일 있었던 제3회 지방선거에서 홍 전 시장은 한나라당 염홍철 후보에게 지고 말았다.

"아픔을 겪으니 세상에 대한 것이 달라지더군. 아침저녁으로 현장을 뛰어다닌 보람이 없는 거야. 결실은 있지만 알아주지 않는 거지."

홍 전 시장에게 그 날의 패배는 무엇보다 쓰라린 추억으로 여전히 남아 있는 듯하다.

홍 전 시장은 후배들에게 충고한다.

"선거는 촉각도 방심해선 안 된다. 늘 잘 한 것은 금방 잊어버려도, 못한 것은 표로 연결된다. 후배들은 이 사실을 잊지 말길 바란다"고….
 

   
▲ 홍선기 전 대전시장이 민선 2기 당시 이재선 의원과 시내버스를 타고 대전시내를 돌아보고 있다.

◆대전을 떠나다 = 홍 전 시장은 선거 패배 직후 대전을 급히 떠났다. 경기도 수지의 한 아파트에 거처를 마련하고 부인과 단 둘이 옮겼다. 그리고 입을 다물었다.

지역 언론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홍 전 시장이 낙선 직후 대전을 떠난 이유에 대해 궁금해 했다. 남의 말하기 좋아하는 이들은 '선거 패배의 후유증이 너무 심해 도저히 대전에서 살 수 없어 떠났다'는 근거 없는 소문도 돌았다.

이런 말들이 돌고 돌아 홍 전 시장의 귀에도 들어갔지만, 그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렇게 오늘까지 살고 있다.

그동안 국회의원 선거가 있을 때마다 그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실제로 여러차례의 권유도 있었다. 하지만 홍 전 시장은 동요하지 않았다. “사람의 욕심이란 한이 없다. 그러나 난 이미 내게 주어진 시대와 상황에서 최선을 다했고 일도 많이 했다고 생각해. 무엇보다도 정치인들도 세대교체가 되는 것을 보면서 우리 세대는 이제 일선에서 물러날 때가 됐구나라는 생각이 들더군.”

대전을 떠난 지 10년. 홍 전 시장은 그동안 '말을 아끼며 살아온 이유'에 대해 '부재기위 불모기정'(不在其位 不謨其政·그 위치에 있지 않으면 그 정사를 논하지 말라)이라는 공자의 말로 설명했다.

비록 '현역'에서 은퇴를 했지만, 그의 말 한 마디나 사소한 행동 하나는 여전히 대전·충남에서 영향력을 미친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말이다. 그것을 홍 전 시장은 스스로 경계했던 것이다.

그는 “한 번 흘러간 사람은 역류 할수 없듯 조용히 묻혀 세상 보아야 한다. 은둔이 아니라 퇴직자의 당연한 길이다”라고 말했다.

표현과 방식은 다를지라도 고향을 위해 헌신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부담주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선배' 홍선기가 후배들에게 지켜줘야 할 도리였고, 그가 배운 '선비 정신'이었다.

홍선기는 대전에서 낳고 자라서 고향 대전·충남에서 평생을 공직에 몸담았다. 대한민국 정치 역사의 부침을 온 몸으로 받으며 살아왔다.

격동의 세월 속에서 그가 오늘까지 존경받는 이유는 그의 좌우명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처럼 흔들림 없는 소명을 갖고 순리대로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그가 대전에 남긴 수많은 족적은 지울 수 없는 역사로 여전히 남아 있다. <끝> 이의형 편집부국장 겸 정치부장

이선우 기자 swlyk@cctoday.co.kr

 

<홍선기 전 대전시장 프로필>

▲1936년 10월 3일 대전 출생

▲학력: 가수원초, 한밭중, 대전고, 중앙대 경제학과, 연세대 행정대학원 수료, 충남대 명예행정학 박사

▲경력: 충남도 기획담당관, 아산군수, 서산군수, 민정당 충남도지부 사무국장, 민정당 충남도지부 발전위원, 대전시장, 신용관리기금 이사장, 충남도지사, 민자당 국책자문위원, 자민련 총재 특별보좌관, 대전시장(자민련), 세계과학도시연합회장, 한남대 경영대학원 겸임교수, 대전대·한국교원대 초빙교수

▲녹조훈장, 홍조근정훈장




Posted by 이선우